고물가 상황에 오히려 소확행 소비 트렌드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 정부는 떠 넣어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군대를 해산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내부 문제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었다.
『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다양한 요인 중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할 수는 있지만.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일본·중국·러시아가 물고기(조선)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조선의 식민지화 책임 문제는 크게 일본의 책임론과 조선 정부의 무능론으로 나뉘었다.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